[커리어 노트 68] 엄마는 자기 인생을 잘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연임신이 되지 않자 불임 병원을 찾았다. 아무 이상 없으니 조급해 하지 말라는데 그게 안된다. 임신 테스트기가 임신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면 다시 기다려야 하는 한 달이 야속하기만 하다. 온갖 정보를 찾아본다.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음식,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비타민들, 임신에 좋다는 운동… 차라리 원인을 알면 좋으련만, 원인불명 불임은 이유도 모르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게다가 속도 모르고 거드는 주변 사람들, “왜 애를 안 가지세요.”, “그래도 애는 있어야지”, “애는…” 내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묻지는 못하고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그게 더 싫다.
그렇게 시작한 시험관. 매일 맞는 호르몬 주사는 참을만했다. 다행히 내 몸은 잘 반응을 잘 했고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난자들이 만들어졌다. 수정란이 내 몸 밖에서 만들어지니 자책으로부터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임신 과정에 여자몸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니!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찾으니 복수가 차서 바로 이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수정란 이식만 하면 된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복수가 찬 상태에서는 이식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배양된 수정란 모두 냉동 보관이 결정되었고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를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혹여나 뭔가 잘못해서 인지 곱씹게 된다. 눈물 밖에 안 난다.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수정란을 이식하기 때문에 시험관 시술은 다태아의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초음파에 쌍둥이가 찍혔을 때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임신이 됐다는 기쁨과 이걸 다시 안 해도 된다는 안도와 그런데 쌍둥이야.. 하는 무서움이 섞여서 잠시 얼음이 되었던 것 같다. 커다란 미국 의사 눈에는 내가 너무 왜소해 보였을까? 의사는 내가 괜찮은지 물었다. 그리곤 힘들 것 같으면 (다태아를 단태아로 남기는) 선택적 유산이라는 것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는 괜찮은지…’, 아이가 만들어지고 자라기 좋은 상태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나의 생각을 묻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순간 외계 언어로 들렸다.
출산을 하자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모유 생산. 태어나서 바로 인큐베이터 생활을 한 쌍둥이 아이들은 이미 분유에 익숙해져 버렸고,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제 힘껏 빨아도 나오지 않는 모유에 매번 짜증을 냈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던 엄마는 모유에 좋다며 돼지 족을 우려내셨다. 원래도 고깃국을 좋아하지 않는데 돼지 족 우린 국물을 먹는 일은 참 곤욕이었다. 마침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셨던 도우미분이 젖샘을 자극해야 한다며 가슴 마사지를 해주었다. 온몸의 세포가 성을 내며 찌릿찌릿한 아픔이 퍼지는데 나는 참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초유를 못 먹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된다느니,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된다느니 하는 말들 중 그 어느 것도 산모를 걱정하는 말은 없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을 가진 고등동물에서 갑자기 젖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불경스러워서 아무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 것에 대한 당황, 억울함, 분노, 슬픔… 이런 감정들이었던 것 같다. 매니저로 승진을 하고 그래도 나름 내 커리어를 잘 쌓아가던 서른 중반의 나는 모유도 못 만드는 세상 형편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내가 몹시 이상했다. 그냥 뭘 해도 내 잘못인 것 같은 자책감이 늪처럼 나를 끌어내렸다.
엄마라는 사람은 누가 아무 말을 안 해도 본능적으로 아이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성애’라는 말이 가진 사회적인 기대와 압박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용어인데, 적어도 생명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는 임신과 출산을 고스란히 겪은 산모가 가장 크게 느낀다. 그러니 주변에서 보태지 않아도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너무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 낯설고 무섭고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는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나’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백지의 상태였다고나 할까? 이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시선을 받게 되고 어떤 사회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나와 엄마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없어지는 나 자신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만큼이나 내가 건강하게 내 삶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지나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자기 일을 잘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유퀴즈 명의 편에 나오신 전종관 선생님 메세지이다.
그렇다. 엄마는 자기 인생을 잘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