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노트 62] 동료 평가 (1) 자기 평가서와 평가자 구성

처음으로 동료 평가를 경험해 본 것은 미국 디자인 대학원 시절 한 수업에서다. 컨설팅 회사의 CEO면서 강사를 겸하고 있던 교수님은 그 아우라만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분이셨다. 학기가 끝나면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 1–2명을 본인 회사의 인턴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것은 많은 학생들의 선망의 기회였다. 비즈니스 스쿨에서나 배울 것 같은 내용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는데, 4–5명으로 짜인 그룹 작업은 마치 각 프로젝트 팀들이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듯 진행이 되었고 마지막 과제는 투자자에게 가상 피칭하는 프레젠테이션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칠 때 즈음엔 난 거의 반 넋이 나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복병은 수업이 끝나고 진행된 Peer Evaluation (동료 평가) 이었다. 문항은 이러했다. ‘당신이 기업 대표라면 A를 채용하겠는가?’, ‘팀 프로젝트로 10만 달러를 벌었다면 각 멤버들에게 어떻게 분배하겠는가’. 난생처음 해보는 동료 평가도 낯설었는데, 성실도나 참여도 같은 내용을 묻는 게 아니라 철퍼덕 대놓고 당신이 사장이라면 이 멤버를 채용하겠냐니… 구체적인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나의 제한된) 실전 경험을 토대로 동료 평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동료 평가 시스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6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글이 길어질듯하여 3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려고 한다.
1탄:
자기 평가서 (Self-assessment)
평가자 구성 (Peers)
2탄:
피드백 (Feedback)
조정 (Calibration)
3탄:
시스템 (System)
문화 (Culture)
첫째, 자기 평가서 (Self-assessment)
해당 기간 동안의 업적을 기술한다. 매번 할 때마다 진땀 빼는 일 중 하나이다. 특히 겸손하고 나서지 않는 것이 미덕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아마 미국이 가장 ‘셀프 프로모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결과물을 포장하는 것을 기본 생활 기술이라고 배우고 자란다.
평가의 기록이 ‘글’이라는 매체로 이루어지다보니 글쓰기 실력이 드러난다. 가끔은 평가서가 실제 업적을 뛰어넘는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읽다 보면 마치 지구를 구한 어벤저스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ㅎㅎ).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이룬 성과 대비 자기 평가서가 너무 허접해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경우도 생긴다.
간혹 자기 평가서를 소홀히 여기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그래봤자 주는 사람 마음이라며 스스로 포기해 버리거나, 초 치기 숙제하듯 귀찮다고 대충 해버리거나, 자기 평가서가 나의 실력(문서 기획력, 전략 수립 능력, 메세지 전달력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기 평가서는 나의 과거 시간과 업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나조차 소중히 여기지 않는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공정하고 정당하게 평가해 달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던 경험이 있었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현재의 보스가 영원한 보스일리 없고, 기존 팀에 영원히 있을 리도 없고, 기존 회사에 뼈를 묻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자기 평가서는 나의 커리어 기록이고 그래서 소중하게 쌓여야 하는 나의 자산이다. 물론 이 시스템을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료 평가 시스템을 가진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자기 평가서는 나를 지켜줄 근거 문서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라면 시스템에 남겨진 문서에 적힌 내용을 지속해서 무시하기는 어렵다.
성과의 포인트와 프레임을 어떻게 잡을지, 실제 과제의 수치적 업적 외 비가시적인 업적 (팀워크, 프로세스, 문화 등)을 어떻게 포장할지, 어떤 문장으로 기술할지 등 관련된 좋은 책, 수업, 정보들이 많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셀프 프로모션은 마라톤 커리어를 끌고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베이스 역량인 만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하는 게 필요하다.
둘째, 평가자 구성
나와 함께 협업을 했던 동료(peer) 중 나의 업적에 대한 평가를 해줄 동료 평가자이다. 평가자의 범위, 인원수, 익명성 여부 등은 아마도 동료평가제를 운영하는 회사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다.
평가자는 같은 팀 내 (같은 리포팅 라인)로 국한하지 않고 실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여러 부서) 프로젝트 멤버들로 구성되는 게 좋다. 실제 매니저보다는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옆 개발팀 엔지니어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나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이 평가자로 구성이 되었는지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 될 수 있다.
누구에게 평가를 받을지 본인이 지목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평가자 구성은 중요한 전략이다. 동료 평가는 업적평가 결과, 승진 여부, 그리고 더 나아가 연봉 인상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 평가서에 기술된 내용에 대해 동의하고 확인을 해 줄 사람으로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간혹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선택을 했다는 경우가 있는데, 업무 피드백은 수시로 받도록 하고 평가에서는 내 결과를 (확실하게) 확인해 줄 평가자가 필요하다. 간혹 평가자로 지목이 되었는데 평가서에 기술된 내용에 대해 본인은 잘 모르고 그래서 할 말이 없다고 토로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그래서 평가자에게 평가자가 되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평가서에 기술될 내용 중에서 어떤 부분에 대한 것을 평가해 주면 좋을지와 소프트 스킬 영역에서 해당 평가자가 특별히 언급해 주면 좋을 내용 (참여도, 창의성 등) 등을 요약해서 미리 전달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2탄에서 계속>
